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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旭

在旭

1891. 11. 13 ~ 197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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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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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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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통영장터 만세시위
  • · 신간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11월 13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신정(新町)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해산물상을 하다가 통영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통영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8일 오후 9시경 관란재(觀瀾齋)에서 학생 2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 라고 쓴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시작되었다. 3월 22일에는 통영면 면서기 3명, 군청 직원 3명, 산림 기수 1명 등이 청년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계획하다가 붙잡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영면의 장날인 3월 28일을 이용하려는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당일 오후 4기 통영면 부도정(敷島町) 시장(현 통영중앙시장)에서 이종준(李鍾濬)으로 하여금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종이 깃발을 작성하게 하였다. 아울러 당일 시장에 온 재봉업자인 박성일(朴星日)에게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였다. 오후 5시경 박성일 등과 함께 종이 깃발을 장날에 모인 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시위로 붙잡혀 1919년 4월 18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에는 신간회(新幹會) 통영지회(統營支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요시찰인’으로 지정되어 1926년 6·10만세운동 그리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활동은 알려진 바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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