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남
朴壽男1916 ~ 1940. 7.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심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일심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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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1940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25세로 1916년생으로 추정된다. 빈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독학하며 보통학교 수준의 학력을 갖추고 사회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각하게 되었다. 1934년 10월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석탄사(石灘寺)에서 백초월(白初月)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항일의식을 가다듬어 갔다. 백초월은 일제강점기 내내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승려로, 진관사·영원사·각황사·용화사 등을 거점으로 항일 불교의식을 전파해갔다. 특히 1920년대부터 ‘일심만능주의(一心萬能主義)’, ‘군교통일주의(群敎統一主義)’, ‘세계평화주의(世界平和主義)’를 주창하는 일심교(一心敎)(혹은 (一心會)) 교리를 설파하였다. 일심교의 요체는 한 마음을 다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즉 독립할 수 있다는 항일 민족의식의 발로였다. 백초월을 통해 항일불교를 접하게 된 후 1937년경 서울 마포의 진관사 포교당(현 극락암)에 머무르며 조선운송주식회사 용산영업소의 임시철도노동자가 되었다.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침략전쟁에 한국인을 동원하자, 이에 저항하기 위한 독립운동을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마포 포교당을 거점으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구체적인 항일투쟁을 모색하였다. 1939년 10월 16일 용산역에서 근무하던 중 중국 펑톈(奉天)으로 향하는 일본군 수송열차에 ‘조선독립만세’, ‘동양평화는 조선문제와 조선민족의 미래다’ 라는 항일 문구를 적었다. 소위 육군지원병제도를 통해 병력 동원을 획책하던 일제 당국은 이 사건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주도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에 나섰다. 1939년 10월 23일 마포포교당에서 붙잡혔고, 이후 백초월, 포교당 주지 김형기 등도 일본군 헌병대에 붙잡혔다. 용산경찰서에서 수개월 간 심문받은 후, 소위 ‘불경죄’·‘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다가, 1940년 7월 14일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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