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권
朴炳權1907. 11. 26 ~ 1942. 3.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위친계(爲親契)
- · 당상리저축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위친계(爲親契)
- · 당상리저축조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907년 11월 26일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동진면(東津面) 당상리(堂上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상식(朴祥植)이다. 1930년대 농민조합운동에 참여하였다. 군산 사립 영명학교(永明學校) 고등과 2학년을 마치고 고향인 동진면 당상리에 돌아와 1928년 1월부터 1년간 고향 동진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근무하였다. 1928년 5월경부터 최옥환(崔玉煥)·최순환(崔順煥) 등과 함께 신사상 연구 모임을 만들어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 대의』, 『제2 빈핍물어(貧乏物語)』, 『무산청년에게 호소함』,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역사』, 『사회주의 세상이 된다면』, 『노동조합조직론』 등의 서적이나 관련 신문·잡지 등을 탐독하였다. 이들과 함께 신사상을 연구하면서 공평한 사회 실현을 도모하기 위한 농민조합 조직의 필요성을 깨닫고, 1931년 (음)10월경부터 최씨 문중의 제각(祭閣) 등 여러 장소에서 회합을 가졌다. 회합의 결과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당상리의 위친계(爲親契)를 농민조합으로 탈바꿈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실현시키고자 주도적으로 나서 당상리저축조합을 조직하여 부모의 상을 당한 경우 서로 공제할 뿐만 아니라 무산대중을 옹호하고 생활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1932년 3월 6일 위친계 최상기(崔相基) 등 회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를 열고 찬성을 얻어 당상리저축조합 출범을 공식화하였다. 이후 1932년 (음)4월경부터 조합원 20~30명 정도를 모아 놓고 농민의 권익보호와 신사회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다 붙잡혔다. 1934년 6월 1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9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2년 3월 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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