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基昌
基昌1922. 9. 12 ~ 2012. 12.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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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2년 9월 12일 경기도 이천군(利川郡) 신둔면(新屯面) 수하리(水下里)에서 출생하였다. 4남 1녀 가운데 장남이다. 어린 시절에 서당에 다니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1935년~1936년 무렵 이천보통학교(利川普通學校) 4학년으로 편입하였다. 보통학교 졸업 후 가정 형편으로 다시 서당을 다니다가, 1939년 경성공과학원(京城工科學院)에 합격하였다. 학교 입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쓰루자와 쇼키치(鶴澤正吉)로 창씨개명을 하였다. 경성공과학원 재학 중 고서점에서 『조선독립운동비화』·『일한병합사』 등을 구입해 읽고 식민지 현실을 자각하였다. 일본어 사용반대, 창씨개명 반대, 신사참배 반대 등을 주장하고 다른 학생들을 규합하여 졸업 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동참할 계획을 세웠다. 경성공과학원을 졸업한 후 1941년 경상남도 진주(晋州)군청 산림청 합천사방사무소에서 근무하였다. 이때 학교 동창들에게 연락해 독립운동의 뜻을 함께 할 동료들을 규합하였다. 당시 보낸 편지가 검문에 걸려 1942년 4월 합천경찰서에 붙잡혔다. 같은 해 10월 29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5년 1월 29일 가출옥한 후 사상 관찰 대상이 되었다. 일제는 1937년 12월 소위 사상법보호관찰법을 시행하여 사상범에 대한 보호관찰제도를 운영하였다. 1942년 3월 23일 칙령 제193호 조선사법보호위원령과 제령 제9호 조선사법보호령을 통해서 사상보호단체를 설치하고 수용 시설을 정비하였다. 진주에 설치된 진주사법보호기관인 진주향양회(晋州向陽會)에서 사상범으로 감시를 받았다. 그곳에서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대한독립청년단 신둔면 지부 회장을 지냈다. 1958년에는 신둔면 면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경기도 교육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이천향교 전교, 성균관 부관장, 지역 단체인 한천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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