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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덕

姜承德

미상 ~ 193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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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승덕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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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만주방면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출생 연도와 출신지는 미상이다. 1920년 후반 동삼성(東三省)을 장악하고 있던 장쭤린(張作霖) 군벌이 더욱 친일화하고 일제가 이를 기회로 만주 침략을 본격화하자, 남북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하던 정의부·참의부·신민부와 주요 항일 단체는 이에 대응하여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위해 만주의 전 항일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민족유일당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이 좌절한 뒤인 1929년 4월 1일 정의부를 중심으로 신민부와 참의부의 일부 세력이 연합하여 국민부를 결성하였다. 이에 따라 정의부 의용군을 중심으로 참의부와 신민부의 일부 독립군을 통합하여 조선혁명군을 새롭게 편성하였다. 국민부는 그해 9월 하순 제1회 중앙의회를 열고 독립운동과 자치를 분리하여 독립운동을 민족유일당 조직동맹에 맡기기로 하고 중앙기관 가운데 군사부를 폐지하였다. 이어 그해 12월 20일 민족유일당 조직동맹의 발전적 형태로 조선혁명당을 창당하고 조선혁명군도 이에 소속시켰다. 조선혁명당은 실질적인 민족유일당은 아니지만, 남만주 일대의 유력한 정당으로서 남만주 한인 사회의 자치기관인 국민부와 군사 조직인 조선혁명군을 영도하였다. 조선혁명군은 조선혁명당의 지휘를 받는 당군(黨軍)으로서 1929년 12월 조선혁명당의 결의에 따라 종전 10개 중대를 7개 중대로 재편하고 주둔 지역도 동만주 지방으로까지 확대하였다. 조선혁명당은 1930년 8월 8일 집행위원회를 열고 조선혁명군을 5개 중대로 나누기로 결의하고, 제1중대장에 김보안(金輔安), 제2중대장 양세봉(梁世鳳), 제3중대장에 이윤환(李允煥), 제4중대장에 김문학(金文擧), 제5중대장에 이종락(李鍾洛)을 각각 임명하였다. 남만주의 각 지역에 분산 배치된 조선혁명군은 한인 사회의 보호, 군자금 모집, 친일 밀정 처단, 그리고 국내 진공 작전을 통한 일제 기관의 파괴 등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가을 일제의 대토벌 이후 조선혁명군은 세력이 약화하였으나 1930년대 후반까지 재만 독립군으로서 무장투쟁을 줄기차게 펼쳤다. 1936년 12월 조선혁명군 제2대대 정사(正士)로서 조선혁명군 제2중대 제1소대 부사(副士) 강익신(姜益神) 등 13명을 이끌고 제3구(區)에 거주하는 강승홍(姜承洪)의 집에 머물면서 평북 위원경찰서의 신천출장소 습격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때 부근을 순찰하던 신천출장소 요시다(吉田) 순사부장 이하 5명이 이를 탐지하고 급히 현장 출동 명령을 받은 신천출장소 경찰 9명과 함께 12월 9일 오전 11시에 강승홍의 집을 습격하였다. 조선혁명군과 일본 경찰 사이에 교전이 일어났고, 이때 동지 11명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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