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환
朴世煥1883. 11. 29 ~ 1948. 4.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애국부인회
- · 의성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대한애국부인회
- · 의성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1883년 11월 29일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증산면(甑山面) 오화리(五和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성장(朴成章)이다. 대한애국부인회·의성단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락원으로 강서군 일대를 순회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독립운동가 간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1919년 6월경 평양에서 기독교 감리회 여신도들이 중심이 된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가 결성되었다. 당시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아 활동에 어려움이 따르자, 송성겸(宋聖謙)으로 하여금 애국부인회 증산지회(甑山支會)를 설립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하였다. 1920년 10월 증산지회장 송성겸이 군자금을 나르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직이 발각되자 만주로 피신하였다. 만주에서 활동 중 1923년 4월 장춘경찰서(長春警察署)로부터 재류금지처분(在留禁止處分)을 받아 신의주경찰서로 이송되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 후 중국 지린성(吉林省)으로 건너가 의성단(義成團)에 입단하였다. 의성단은 1923년 7월 편강렬(片康烈)·양기탁(梁起鐸) 등에 의해 지린과 창춘(長春)을 연결하는 길장선(吉長線) 근처 카륜(卡)倫에 조직된 독립군단이다. 의성단은 창춘·지린 등 대도시를 활동무대로 남만철도(南滿鐵道) 파괴, 조선총독 및 관동장관 암살, 한국 내 관공서 파괴,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등을 목적으로 한 단체로 창춘 일본 영사관, 펑톈(奉天) 시내 만철병원(滿鐵病院) 습격 등의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중국인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이주 한인 지원과 보호에도 적극적이었고, 이주 한인 대상 금융기관 설립, 실업교육 실시 등을 위한 자금 마련에도 노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한 의성단에서 지린성 이퉁현(伊通縣) 고유수(孤楡樹)에 설치한 연락기관 책임자로 활동하며 단원 모집과 훈련에 매진하였다. 의성단 초대 단장 편강렬이 1924년 7월 하얼빈(哈爾濱)에서 활동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그 활동이 약화되었다. 제2대 단장 승진(承震)의 뒤를 이어 3대 단장으로 선임되어 의성단을 이끌어 나갔다. 1925년 1월 의성단은 해체를 선언한 후 정의부(正義府)에 통합되었다.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1948년 4월 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