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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관

金永瓘

1914. 10. 20 ~ 200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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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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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寶城)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보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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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14년 10월 20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회천면(會泉面) 군농리(郡農里)에서 김학현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7년 3월 보성공립보통학교(현 보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공립농업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29년 전남 광주 지역의 각 중등학교에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비밀 독서회 모임이 조직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광주공립농업학교에서도 조길룡(曺吉龍), 김순복(金順福), 이영범(李翎範), 정욱(鄭昱) 등을 중심으로 ‘광주농업학교독서회(光州農業學校讀書會)’가 결성되었다. 이 때 독서회 활동으로 민족 의식이 고양되었고 광주학생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역에서 발생한 한인 학생과 격투를 벌인 일본인 학생에 대한 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은 경찰과 소방대의 저지를 뚫고 교가와 운동가를 부르며 광주 시내 중심지를 행진하였다. 시내 중심지를 행진한 광주공립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은 오후 3시경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로 돌아와 해산하였다. 하지만 일제 경찰은 11월 3일 시위에 참여한 학생 70여 명의 한인 학생을 붙잡아 60여 명을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다. 이러한 일본 경찰의 일방적인 대규모 검거에 항거하여 장석천(張錫天)·장재성 등 전남청년연맹(全南靑年聯盟) 간부들을 중심으로 제2차 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광주고보독서회(光州高普讀書會)’ 회원인 오쾌일(吳快一)이 11월 11일 밤 격문 4,000여 매를 등사하였고, 이 격문은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 독서회원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 11월 12일 아침,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도 계획대로 수업 시작과 동시에 일제히 교문을 박차고 나가 격문을 살포하며 시가행진을 전개하였다. 이 때 학우들과 함께 “구속 학생 석방”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 앞까지 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7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30년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오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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