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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남

金鴻南

1911. 4. 22 ~ 1996.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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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홍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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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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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1년 4월 22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 당락리(堂洛里)에서 출생하였다. 김학남(金鶴南)이라는 이명을 썼다. 1929년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2학년으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은 독서회 활동으로 민족의식이 고취된 한인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의 차별에 반발하면서 일어난 충돌에서 시작되었다. 1929년 6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장재성(張載性)이 광주지역 학생들과 회합을 가지고 “조직적 단결을 통한 사회주의 연구와 실행”을 위한 ‘독서회 중앙본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 학교에 하부 조직으로 독서회 결성이 진행되었다. 1929년 6월 중순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 등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21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을 한 후 광주고보 독서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과 광주고등보통학교 한인 학생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결국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광주중학교와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 간의 대규모 난투극이 벌어졌다. 양교 학생들은 무기까지 휴대하여 싸움에 참여하였다. 교사와 경찰, 소방대까지 출동해 양교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학교로 돌아온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독서회 회원들의 주도로 무장시위를 추진했고, 광주여고보·농업학교·사범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연합 가두시위로 발전하였다. 11월 3일 시위 이후 광주 지역 중등학교들은 모두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일제 경찰은 사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에 대한 대규모 검거를 실시해 11월 12일까지 72명의 한국인 학생을 붙잡아 그 중 62명을 검사국에 송치하였다. 광주 지역 학교의 독서회 중심 인물들은 전남청년연맹과 협의하여 2차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때 장재성으로부터 격문 인쇄를 의뢰받은 오쾌일(吳快一)과 합력하여, 11월 11일 밤 박기석(朴紀錫)의 집에서 1,000매의 격문을 인쇄하였다. 11월 12일 시위에서 인쇄된 격문을 교내에 살포하고, 가두 시위의 선두에서 지휘를 담당하여 시위를 앞장서서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광주고보에서 퇴학당하였다.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1심과 1930년 5월 15일 대구복심법원의 항소심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또한 독서회 활동과 관련해서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3월(미결구류 통산 70일)을 받았고, 1931년 6월 13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213일 통산)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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