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준
金元俊1888. 2. 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정의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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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1888년 2월 2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정호면(晶湖面) 원호리(源湖里)에서 태어났다. 자세한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20년 5월 하순경에 문창선(文昌善)·황사중(黃士仲)·황면준(黃冕濬)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하였다. 또한 군자금 모집과 비밀단체 조직, 무기 구입 등을 의논하였다. 1920년 6월 상순 경 문창선·황사중·황면준 등과 함께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에 참여하였다. 대한정의단은 1919년 5월 경 북간도에서 대종교(大倧敎)와 공교(孔敎) 교인들이 연합하여 혈전(血戰)을 통한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무장투쟁단체였다. 1920년 7월 23일 문창선·황사중·황면준 등과 함께 각자 권총을 휴대하고, 강동군(江東郡) 삼등면(三登面) 제령리(祭靈里)의 부호 백치운(白致雲)의 집을 찾아가 군자금 40원을 모금하였다. 1921년 2월에도 문창선과 강동군 고천면(高泉面) 광롱리(廣瀧里)의 부호 황재순(黃在淳) 집에 가서 150원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3월에는 황사중·황면준과 함께 성천군(成川郡) 대곡면(大谷面) 지동(芝洞)에 거주하는 부호 김이규(金履奎)의 집에서 500원을 모집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21년 9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21년 10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우리는 당당한 정의·인도에 의지하여 세계를 평화롭게 하고, 조선민족으로 하여금 자유와 평등을 얻도록 하려고, 또 조선의 독립을 목적하고 활동한 것을 혁명죄(革命罪)라고 하든가 다른 죄명을 가지고도 징역이 아니라 사형이라도 처하려면 마음대로 할 것을 어찌하여 하필 그 더러운 강도(强盜)란 죄명을 재판하느냐. 강도란 것은 남의 금전을 강탈하여 주사청루에서 소비하는 것이 강도이지 우리와 같이 나라를 위하여 활동한 것을 강도라고 하니, 재판하는 당신네도 마찬가지 국가를 위하여 재판이고 무엇이고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항의하였다. 이후 1921년 10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다가, 1928년 3월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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