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수
南源壽1915. 2. 5 ~ 1943. 9.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준향계
- · 창유계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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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15년 2월 5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삼화면(三和面) 정림리(井林里, 현 경상북도 울진군 정림리)에서 남진만(南鎭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중랑장(中郎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이다. 1930년대 후반 항일 비밀조직 준향계(準香契)와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대 후반 울진에서는 마을을 기초단위로 한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이 활성화되었다. 특히 정림리와 울진면(蔚珍面) 호월리(湖月里)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활동이 있었다. 이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으로 마을의 유력자 층은 반농민적 성격을 노골화하였는데, 이에 정림리 지역에서는 반일운동이 구체화되었다. 울진 지역 혁명적 농민조합을 이을 새로운 조직체로 1938년 울진 읍내에서 임시헌(林時憲)·노하순(盧夏淳) 등과 비밀 항일단체인 준향계를 조직하였다. 준향계는 전통적인 계(契)의 모습이었으나 실상은 항일 비밀단체였다. 준향계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1939년 10월에는 준향계를 창유계로 개칭하여 조직을 확대시켰다. 단체의 구성원은 102명으로 늘었다. 창유계는 울진 농민조합의 목적을 계승하면서도 조선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의 필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기존의 준향계를 확대하여 결성한 것이었다. 창유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하고, 임시정부가 위치한 중국으로 계원을 파견할 것을 운동 방침으로 정하였다. 창유계는 비밀 회합을 갖고 전병찬(田炳瓚)·전만수(田萬秀)·윤대규(尹大奎)·주상준(朱尙俊)·최연덕(崔淵德)·장영준(張永俊)·윤종수(尹宗洙) 등을 참여시키며 조직을 확대하고, 반일 선전을 이어나갔다. 1943년 3월 창유계원들과 ‘우리도 꽃필 때가 있다’라고 쓴 종이를 들고 촬영한 사진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계원 102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되었다. 예심을 받던 중인 1943년 9월 12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후에도 재판이 이어졌고, 해당 사건에 대한 판결은 1944년 7월에 내려졌다. 이미 옥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판결은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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