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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협협

南俠俠

19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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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협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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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192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3)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수기옥(須奇屋) 출신이다. 1930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18세로, 1912년생으로 추정된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女子高等普通學校) 재학 중인 1928년 장매성(張梅性) 등 6명과 함께 비밀결사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하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 활동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8년 11월경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 뒷산에서 장매성의 제안으로 결성된 비밀결사 소녀회가 조직되었다. 소녀회는 한인 여성이 일본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 남성에게 압박받는 삼중고를 겪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과학 연구를 목표로 삼았다. 소녀회는 매월 1회 정기 모임을 열어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활동 방침을 협의했으며, 매달 회비를 모아 독서 자료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장매성의 방에 모여 수차례 월례회를 개최하고 회원 모집에도 힘써, 이듬해 5월에는 박계남(朴繼南)외 4명이 소녀회에 추가로 가입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시위 현장(광주역 앞)에서 붕대와 약, 물을 지참하고 부상 학생을 돕는 등 큰 활약을 하였다. 이후에도 광주학생운동으로 투옥된 학생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과 추가 회원 모집을 이어갔다. 또한 학교에서 시험을 거부하고 백지동맹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1929년 11월 17일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으며,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3월에는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항일 활동을 하던 중 1930년 1월 15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광주형무소에 구금되었다. 형무소에서 장기간 조사를 받다가 1930년 7월 1일 예심이 종결되었고, 다음날인 7월 2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1930년 9월 29일 1심에서 담당 검사가 치안 방해를 이유로 일반인 방청 금지를 요청하여 가족과 기자들은 곧바로 법정에서 퇴장해야 했으며, 조사를 담당했던 일제 경관과 정·사복 일제 경찰 다수가 방청석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을 받았다.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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