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동
南基東미상 ~ 194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열단
- · 민족혁명당
- · 조선의용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호유백(胡維伯)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출생일은 자료상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일본 도쿄(東京)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중등학교를 다녔고, 1933~1934년경에 일본의 조선홍색공회(朝鮮紅色工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南京)에서 의열단에 가입했으며, 의열단이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 창당에 합류하자 이때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김원봉(金元鳳)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 간부학교) 제3기로 입학하여 과정을 마쳤다. 의열단 간부학교 제3기생은 총 44명이었고 3개 반으로 나뉘어 훈련을 받았는데, 제3반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았다. 간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중국 관내 지역과 만주 지역, 그리고 국내에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동기생인 왕지옥과 싱쯔(星子)성자현 남의사 등과 고등훈련소를 수료하고 난징에서 민족혁명당 특무부원으로서 활동하였다. 1937년 김학무(金學武) 등이 이끄는 혁명동지회(10월회) 성원들과 국내에서 건너온 최창익(崔昌益) 등이 결성한 조선청년전위동맹에 가입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설립된 장시성(江西省) 싱쯔현(星子縣)의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특별훈련반(星子分校)(후에 강릉분교)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았다. 특별훈련반을 졸업한 후, 1938년 6월 3일부터 한커우(漢口)의 대공중학교에서 대기하던 중에 김원봉이 동북 노선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은 조선청년전위동맹 계열 49명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탈퇴하여 재한구조선청년전시복무단(在漢口朝鮮靑年戰時服務團)(전시복무단)에 참여하였고, 우한(武漢)의 시민 구국 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시복무단은 동북 진출을 모색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선민족전선연맹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가 창설될 때 참여하여, 제2구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41년에는 제5전구 사령부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조선의용대 제2구대의 정치 지도원으로 선임되었고, 허난성(河南省) 장더(彰德, 현 安阳) 방면으로 파견되어 항일 선전 활동에 종사하였고, 의용대의 주력이 화베이(華北)로 북상할 때 같이 이동하였다. 북상 후에 화북조선청년연합회의 회원과 조선의용대 화베이지대원으로서 선전 활동에 종사하였다. 1942년에는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과 중국 팔로군 신편 제1여단에 배속되어 대일 공작을 전개하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염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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