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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鎭綱

鎭綱

1889. 3. 20 ~ 1979.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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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羅鎭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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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국민향촌회
  • · 대한독립대동청년단
  • · 광복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평양 만세운동
  • · 국민향촌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9년 3월 20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임원면(林原面) 청호리(淸湖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평양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대한독립대동청년단(大韓獨立大同靑年團) 등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8월 중순 만주 콴뎬현(寬甸縣) 소재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 사령관 이탁(李鐸)은 대한독립광복군의 국내 지부를 설치하기 위해 김봉규(金鳳奎)를 파견하였다. 국내에 잠입한 김봉규로부터 대한독립광복군 국내지부 설치를 권유받자, 김이숙(金利淑)·김응규(金應奎)·김국홍(金國洪)·곽치문(郭致文) 등과 함께 청호리(淸湖里)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를 조직하였다. 청호리 국민향촌회는 1919년 7월 평양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대동군지회(大同郡支會)였으나, 그 해 11월 대한국민회 본부가 발각되면서 청호리 국민향촌회 간부들이 붙잡혀 활동이 위축되었다. 이어 1919년 하순 김봉규는 사령관 이탁의 명령으로 콴뎬현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의 대동군 지회인 대한독립대동청년단을 조직하였다. 이에 따라 김봉규는 대한독립광복군 평남총영(平南總營) 겸 광복군(光復軍) 제1대장, 대한독립대동청년단 단장, 청호리국민향촌회 회장을 겸하게 되었고, 이때 국민향촌회 평의원, 대한독립대동청년단 부단장, 광복단(光復團) 문서배부위원(文書配付委員)의 책임을 맡았다. 1921년 3월 곽치문·김국홍 등과 함께 대동군을 중심으로 권총을 휴대하고 자산가들에게 군자금 징수하는 한편, 전단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交通局)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21년 1월 평남 중화경찰서에 붙잡혀 45일 만에 석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해 5월 강서경찰서의 가택 수색 결과 무기와 탄약이 발각되어 붙잡혔다. 9월 15일 평양으로 이송되어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총포화약류취체령 시행규칙’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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