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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호

羅聖鎬

1891. 10. 1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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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나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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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회령(會寧)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회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함경북도독판부
  • · 간도국민회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91년 10월 19일 출생하였으며, 본적은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팔을면(八乙面) 창효동(彰孝洞)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5월 이후 간도의 국민회(國民會) 회령지부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통해 회령에 연통제 기관인 함북독판부(咸北督辦府)를 설치하고 활동하였다. 1920년 7월 임시정부에서 내무부 특파원 안정근(安定根)과 왕삼덕(王三德)을 파견해 회령에 함경북도 독판부를 재건하고자 하였을 때, 허룽현(和龍縣)의 국민회 통신부장 박용훈(朴龍勳)을 만나 이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어서 정희용(鄭熙鎔)과 옌지현(延吉縣) 대명월구(大明月溝)에 있는 국민회 본부를 방문하여 안정근과 만나 회령에 임시정부 함북독판부를 설치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후 최방연(崔枋衍)·정희용(鄭熙鎔)·허익근(許益根)·오순준(吳舜濬)(이명 오순예) 등 18명의 동지들과 독판부 조직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주로 폭탄과 총기를 밀반입하여 회령지역의 관청과 은행 등 일제 주요기관 파괴와, 순사와 친일파 처단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임시정부에서 발행하는 독립공채를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였다. 1920년 (음)7월 오순준에게 받은 권총 1정을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나선 황운홍(黃雲興)에게 제공하였고, 회령군 화풍면(華豊面) 인계동(仁溪洞)에 있는 두만강 고령진(高靈鎭)에서 나룻배를 부리는 김재동(金在冬)을 통해 국민회로부터 폭탄 5개를 들여와 일제 기관을 폭파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20년 12월 함경북도 경찰부에 붙잡혀,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폭발물취체벌칙 위반, 총포 및 화약류 취체령 시행규칙 위반 등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았다. 1922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4년 8월 27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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