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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金昌曄

1916. 3. 19 ~ 1976.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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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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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奉化)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봉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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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6년 3월 19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내성면(乃城面) 해저리(海底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암천수광(岩川秀光)으로 고쳤다. 만주로 건너가 옌지현(延吉縣) 용정가(龍井街) 소재 광명(光明)학원 중학부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대학(中央大學) 전문부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도쿄(東京)에서 생활하던 중 한인 학생의 하숙난과 취직난 등을 목격하면서 민족 차별을 자각하고 독립을 염원하게 되었다. 1941년 5월부터 주오대학 전문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 동급생인 김규엽(金圭燁) 등과 회합을 가지고, 항일 구국 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지하 학생조직을 결성하였다. 같은 해 6월 10일에는 일본 도쿄 신전구(神田區) 준하대(駿河台)에 있는 찻집에서 김규엽과 회합하여 민족지도 계몽운동은 국내 사정에 정통해야 하므로 여름방학 동안에 귀국하여 일반 민중과 농민을 상대로 민족의식의 고취와 농촌계몽에 진력하기로 하였다. 이어서 9월 15일과 10월 15일 같은 장소에서 김규엽을 만나 “재만조선인의 대부분이 일본인화하여 유감”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1941년 11월 25일 주오대학 도서관에서 수도교(水道橋)에 이르는 노상에서 김규엽과 조선독립운동의 구체적 방책에 대해 논의하였는데, 졸업 후 조선의 사립중등학교 교사나 학생들과 제휴하여 동지를 규합하려 한다는 김규엽의 이야기에 호응하였다. 같은 해 12월 8일에는 김규엽에게,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인적·경제적으로 상당히 피폐한 상태인 일본이 결국 패전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때 미국과 영국의 원조에 의해 민족운동을 한다면 조국의 독립이 실현될 것이며 자신은 바로 만주로 돌아가 다수의 동지를 획득할 각오라고 말하였다. 1942년 초 만주국 간도(間島) 지역으로 건너가서 일제의 패망에 대한 내용을 유포하면서 독립운동을 함께 펼칠 동지를 규합하려고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3년 4월 23일 전주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육군형법, 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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