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서
金興瑞186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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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5) 한성부(漢城府) 서서(西署) 누각동(樓閣洞, 현 종로구 누상동 일대)에서 출생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18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에 따라 김응서(金應瑞) 또는 김흥서(金興西)로 되어 있기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4월 멕시코 이민 한인 1,033명과 함께 멕시코로 이주하여 4년간 노예 노동을 하였다. 1909년 5월 국민회(國民會) 특파원들의 도움으로 멕시코에 국민회 산하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조직되자 가입하였다. 1912년 1월 멕시코 오학기나(五岳基那)로 이주하여 지방회를 설립하였고, 1913년에는 지방회 구제원으로 선임되었다. 1914년에는 김성민(金聖民)의 사임으로 인해서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3월 멕시코 푸론테라와 프로그레소 등 거주 한인 274명과 함께 쿠바로 이주하여 3월 말 마나티 항구에 도착하였다. 1921년 6월 3일, 김세원(金世元)·박창운(朴昌雲)과 함께 쿠바 마탄사스지방으로 이동하여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Matanzas지방회를 설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1923년에는 동 지방회 법무원으로 활동하면서 3·1운동 기념식을 주관하였다. 지방회와 한인 1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1923년 9월 16일 민성학교를 건립하자, 찬성원으로 참여하여 한인 2세들의 정체성과 독립의식 함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24년 대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25년에는 이세창(李世昌)·이원준·서군경·서선악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지방회를 운영하고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6년 법무원을 사임한 후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1928년에는 회장으로 활동하였고, 1931년에는 다시 법무원, 1934년에는 대의원, 1936년에는 총무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방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1940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제4차 대표대회 마탄사스지방회 대표원으로서 활동하였다. 1913년 6월부터 1945년 1월까지 국민의무금, 대일전선동맹 특연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으로 총 108여 원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후원하였다. 이외에도 각종 구제금과 의연금 등도 기부하여 국민회 지방회의 발전과 한인사회의 유지에 기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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