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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金泰鎭

1873 ~ 1937.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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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태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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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미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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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경기도 개성부(開城府) 북부군(北部面) 예빈리(禮賓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4월 1,033명의 한인과 함께 노예이민인 줄 모르고 속아 멕시코로 이주하였다. 4년간 에네켄농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1909년 5월 해방되었다. 그 해 5월 미주 국민회(國民會) 산하 멕시코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창립되자, 평의원과 구제원으로 선출되어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국민회는 1909년 2월 북미의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하와이 합성협회와 통합하여 조직된 단체로, 1910년 2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마저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로 개칭되면서 해외 한인의 최고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멕시코의 지방회도 이후 대한인국민회 산하 지방회로 개편되었다. 1911년 2월에는 멕시코 타바스코로 이주하여 신한동지방회(新韓洞地方會)를 조직하고 학무원으로 선임되어 교육을 통해 멕시코 한인2세들의 한인정체성과 독립의식을 함양시키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같은 시기 총무로도 활동하였다. 1917년 푸론테라로 이주하여 지방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18년에는 대의원, 1919년 부회장 겸 서기로 선임되어 푸론테라 지역에서 운영하는 국어학교 교사로도 활동하였다. 이외에도 파출위원(派出委員)과 소장을 담당하였으며, 해당 지역 한인들로부터 독립의연금을 수합하는데 앞장섰다. 1921년부터 1928년까지 푸론테라지방회에서 회장·부회장·대의원·학무원·서기·재무원으로 활동하면서 3·1운동 기념식을 주관하며 한인들의 독립의식 고취에 많은 힘을 쏟았다. 1928년 푸론테라 지명이 알바로 오부리곤으로 변경되자, 1929년에는 오부리곤지방회에서 서기 겸 재무로 활동하며 지방회의 살림과 한인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1909~1937년 독립의연금, 독립운동후원금 등으로 총 28원 50전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후원하였다. 멕시코 한인사회 유지와 독립운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1937년 4월 21일 폐병으로 오부리곤 지방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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