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선
金濟善1884 ~ 1943. 6.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국민회 메리다지방회
- · 대한인국민회 신한동지방회
- · 프론테라지방회
- · 멕시코연합지방회
- · 탐피코지방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利院) 후동(後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4년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3월 6일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서 탑승한 1,033명의 이민자 가운데 한명일 것으로 판단된다. 공립협회(共立協會),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공립협회 멕시코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 회원으로서 『공립신보(共立新報)』 유카탄 메리다분전소를 자택에 설치하여, 한인들의 독립운동 고취에 나섰다. 공립협회는 안창호(安昌浩) 등 미주한인 지도자들이 1903년 9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지역에서 설립한 상항친목회(桑港親睦會)를 확대 개편한 것으로, 1909년 2월 1일에는 하와이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와 통합하여 국민회(國民會)가 성립하며, 『공립신보』 도 『신한민보(新韓民報)』 로 신문명을 바꾸었다. 이에 『신한민보』 멕시코 유카탄 지역 발매사무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멕시코 각지에 산재해 있던 단체들을 통합하고 실업을 진흥할 목적으로 친목회를 결성하여 장재(掌財)를 맡았다. 국민회 지도자들은 1910년 2월 1일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와 통합하여 미주 최대의 한인단체인 대한인국민회를 설립하였다. 이에 따라 멕시코의 지방회도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로 개칭하게 되었다. 1910년 메리다지방회에서 평의원, 1911년 신한동(新韓洞) 지역에서 조직된 신한동지방회에서 법무원, 1912년에는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에는 프론테라(Frontera)지방회 서기를 지냈다. 또한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의 독립운동 방향을 멕시코 한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멕시코 각 지방 연합총사무소에 프론테라지방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후 1919년에는 프론테라지방회 법무원으로서 활동하였다. 이어 1920년 멕시코시티지방회 베라크루스(Veracruz) 경찰소에서 서기를 담당하였다. 탐피코(Tampico)지역으로 이동한 후 1921년에는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인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섰다. 1917년 9월부터 1942년 6월까지 국민의무금, 독립금, 3·1운동 기념금 등을 명목으로 수십 차례에 걸쳐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3년 6월 16일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