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洪錫
洪錫1891 ~ 1920. 11. 2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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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9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상세한 출생일시나 출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경신참변(庚申慘變, 간도참변(間島慘變)) 당시 훈춘현(琿春縣) 상의사(尙義社) 지역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청산리전투 당시 함경북도 나남(羅南) 주둔 19사단 사령부가 간도에 불법적으로 침입하였다. 이들이 1920년 12월 25일 작성한 『간도사건선지인사상자조(間島事件鮮支人死傷者調)』에 따르면, 19사단 예하 76연대가 1920년 11월 2일 훈춘현 상의사 회룡봉(回龍峯) 부근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하는 하던 중 한규랑(韓奎良)·박형규(朴炯奎)·박인권(朴仁權)·김승세(金承世)·김용연(金龍淵)·김정규(金貞奎) 등과 함께 붙잡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청산리전투에서 패전한 일본군이 무고한 한인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경신참변의 연장선 상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경신참변은 1920년 10월부터 12월까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듬해 5월까지 지속되었다. 실제로 19사단에서는 한인 마을에 잠복해 있거나 인근 산지로 달아나 숨은 한인 청년들을 독립군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주도면밀하게 수사해 독립군의 잔당을 초토화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독립군과의 교전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경신참변에서 한인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서 서간도를 포함해 사망 3,106명·체포 238명·소실가옥 2,500호의 피해가 있었다고 집계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1920년 11월 2일 일본군이 귀영하던 오후 7시 30분 훈춘현 흑정자(黑頂子) 금당촌(金塘村)의 중간 지점에서 야음을 틈타 탈출을 시도했으나, 일본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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