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朴琪永1893. 2. 25 ~ 1938. 3.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 · 신간회 남원지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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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93년 2월 25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현 남원시) 대산면(大山面) 옥율리(玉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장수에서 박정주(朴政柱)와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3월 23일 천도교인으로써 남원의 천도교인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8월 초순 이충모(李忠模)·김형준(金炯俊)·양재명(楊在明)과 만나 대한의 자주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조직을 주도하였다. 대한국민회는 본부를 서울 안국동(安國洞)에 두고, 각 도회지에 지부를 두었으며, 독립 의식 고취를 위한 선전물의 인쇄와 배포, 군자금 모집을 목표로 하였다. 그 뒤 이양이(李養伊)·정용욱(鄭用郁)·조병준(趙秉俊)·김영우(金永佑)를 회원으로 확보하였다. 대한국민회는 총무부·고문부·외교부·재무부·통신부 이상 5개의 기관을 두었다. 또한 1919년 가을 전주 출신의 천도교도 김영호(金永浩)를 통해 대한국민회 전주지부를 설치하였다. 8월 중순경 장병준(張秉俊)을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함으로써 상호연락 관계를 맺어 독립운동의 협조를 약속하였고, 임시정부에서 전달받은 독립에 관한 문서를 동지들에게 배부하여 독립 의지를 고취시켰다. 1919년 (음)12월 17일 고종 서거 1주년을 기해 독립 의식을 고양할 목적으로 이량·양재명 등과 함께 「읍궁사(泣弓辭)」라는 제목의 선전물 1천 장을 만들어 같은 달 20일 서울 시내에 반포하였다.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 장병준·이동욱 등과 함께 독립 의식을 고양할 목적으로 2월 24일 「대한독립1주년기념축하경고문」이라는 제목의 격문 2만 장을 비밀리에 인쇄하여, 회원을 통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주·대전·대구·마산·목포 등지의 회원에게 보내 1920년 3월 1일을 기해 각 지역에 배포하라고 전달하였다. 이를 전달받은 회원들은 3월 1일 이동욱 외 수 명이 천 수백 장을 배포하였다. 그 격문에는 학생들에게 동맹휴교를, 상인들에게는 철시를 선동하는 내용도 들어 있어 학생들과 상인들의 동참을 유도하였던 것이다. 대한국민회는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으려 노력하였다. 또한 1920년 4월 중순 김봉기(金奉琪)·박승래(朴承來) 등과 함께 임시정부 설립 1주년 축하문을 서울 안국·수송(壽松)·소격동(昭格洞) 일대에 살포하여 독립 의식을 고취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1920년 9월 서울에 파견된 임시정부원 홍도(洪濤)를 통해 군자금의 조달을 촉구하는 임시정부 발행의 군령(軍令)과 애국금 납입고지서 각 1매를 넘겨받았다. 이즈음 대한국민회는 전북 전주의 자산가 장봉한(張鳳翰)으로부터 군자금 850원을 제공받는 등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1920년 10월 전북경찰서에 탐지되어 조직이 발각되었다. 1921년 김영호, 순창의 최규홍(崔圭弘) 등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2년 2월 15일 전주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365일 본형에 통산)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 그 해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되었다. 1927년 8월 신간회 남원지회(南原支會) 창립을 준비하고 지회장에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신간회남원지회에서 1928년 1월 15일에는 전국대회대표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29년 2월에는 총무간사 등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신간회 활동의 일환으로 남원청년동맹과 연합하며 청년운동과 소작쟁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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