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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이

朴根伊

1908. 4. 21 ~ 197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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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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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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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군용열차 습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8년 4월 21일 경상북도 청도(淸道)에서 박대백(朴大伯)과 김연손(金年孫)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상근(朴相根)·박용술(朴龍述)을 사용하였다. 21세 무렵부터 동네 안기택(安琪澤)의 집에서 고용인으로 일하다가, 1930년 1월부터 11월까지 청도역 앞, 이영희 곡물상에서 일하였다. 1931년 11월 19일 경북 청도역 가까이에서 전팔룡(全八龍)·추진구(秋振求)와 함께 군용열차전복 의거를 전개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남의 집 고용인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수송열차에 탄 일본 군인들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여러 차례의 조롱과 박해를 가하자, 여기에 맞서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만주로 파견되는 일본군과 무기를 실은 군용열차를 전복시켜 파괴하자고 결의하였다. 1931년 11월 18일 밤 이들 두 사람과 함께 만주로 파견되는 일본군과 무기를 실은 군용열차가 청도역에 도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어 김광조(金光祚)의 집 부근에서 길이 약 30cm, 폭 약 21cm, 높이 약 15cm, 중량 16kg 돌을 옮겨왔다. 그리고 이를 선로 내의 침목(枕木) 위에 얹어놓고, 건널목 서편 배연상(裵寅相)의 집 앞에서 열차가 달리다가 전복되기를 기다렸다. 11월 19일 오전 0시 22분이 되자 일본군 제8사단 야포병 제8연대 1개 대대와 병포·중기관총·필마 등 군용물자를 실은 봉천행(奉天行) 임시 제3군용열차가 청도역에 이르렀다. 이어 2분 뒤인 0시 24분 청도역을 출발하여 27분 바로 그 건널목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놓아둔 돌은 열차의 아랫부분 제동장치에 걸려 약 50m 정도 끌려갔으나, 열차를 전복시키거나 파괴시키지는 못하였다. 이 일은 선로를 경비하던 철로보선공부(鐵道保線工夫)가 발견하여 역장에게 보고하였고, 일제 경찰의 조사로 3명의 참가자가 모두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31년 12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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