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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면

閔泳冕

188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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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민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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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해주(海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해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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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적십자사
  • · 의용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886년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대차면(代車面) 숙달리(淑達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4세로, 미곡상(米穀商)에 종사하고 있었다. 해주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겪었고, 풀려난 후 대한적십자사와 의용단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에 나섰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해주군 대차면에서 민영조(閔泳朝)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협의, 주도하였다. 주민 약 300명을 모아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같은 해 해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합병 이후 원하는 것이 조선 독립 뿐이었는데 천운이 순환하여 조선에게 독립의 기회를 주었다. 민족인 자는 하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독립만세를 불렀다. 피고도 조선민족이니 어찌 혼자 묵과하여 천벌을 받을 이유가 있겠는가 정의, 인도, 생존의 행위는 결코 죄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없다”며 상고를 하였다. 그러나 1919년 9월 13일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0년 9월부터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와 의용단(義勇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적십자사와 의용단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황해도지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던 장규섭(張奎燮)이 1920년 7월 박치남(朴致楠)·구용칠(具龍七)·곽규호(郭奎浩)·김도현(金道賢)·박시춘(朴始春) 등과 모임을 가지고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였다. 조직은 중앙의 본단(本團) 아래 도단(都團), 분단(分團), 소단(小團)으로 구성되었으며, 소단은 10명, 분단은 10개의 소단, 도단은 10개의 분단으로 구성되었다. 대한적십자사와 의용단은 입단한 단원들로부터 입단금 30원을 받아서 권총 등 무기를 구입하여 친일 인사, 밀정과 경찰들을 사살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자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공채를 판매하였다. 그리고 회원들과 함께 『독립신문』을 읽고 임시정부의 활동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1920년 9월 장연군 속달면(速達面) 태탄리(苔灘里)에 거주하고 있던 의용단 단원 이기춘(李起春)의 권유를 받아 의용단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의용단의 세력을 확장할 목적으로 해주군 대차면 숙달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재용(鄭在鎔) 외 1명을 단원으로 가입시켰다. 1921년 4월 18일 군자금 모집과 독립사상 전파 활동을 전개하다가 황해도 경찰부와 장연경찰서 경찰들에게 붙잡혀 해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구타 등 가옥행위를 당하였다. 1921년 6월 28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같은 해 9월 10일과 10월 15일 평양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 항소와 상고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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