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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렬

姜東烈

1896 ~ 192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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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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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부령(富寧)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부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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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96년경 함경북도 부령군(富寧郡) 관해면(觀海面) 나석동(羅石洞)에서 태어났다. 1925년 경성복심법원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30세인 점으로 미루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중국 간도 옌지현(延吉縣) 상의사(尙義社) 동불사(銅佛寺) 아래 시장(市場)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1910년 일본의 강제 병합 전후 간도로 건너가 허룽현(和龍縣) 덕신사(德新社)의 사립 창동학교(彰東學校)를 졸업하고,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0년 옌지현 숭례향(崇禮鄕) 대명구(大明溝)에 설치되었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15지부에 가입하여 통신원으로 활약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3년 김약연(金躍淵)·백옥보(白玉甫) 등이 옌지현 국자가(局子街)에서 한인 자치기구로 조직하였던 간민회(墾民會)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개칭된 것이다. 1919년 당시 총회장은 구춘선(具春先)이고, 무장 독립운동을 추구하며 군자금 모집, 독립군 양성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국민회 제15지부에 함께 가입한 김희백(金凞百)·김성한(金聖漢) 등과 함께 러시아식 장총과 권총 등을 수차례 매입하여 간도 각지에서 독립군 자금을 모집하였다. 제15지부에 가입할 당시 김희백은 재무, 김성한은 서기를 각각 맡았다. 1920년 3월 초 간도 숭례향 성습자(聲摺子)에 거주하는 이병준(李炳俊)에게 군자금 700여 원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이병준이 일본 관헌의 밀정으로 의심되자 동지들과 함께 산림으로 끌고 가 처단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1924년 일본 영사관 소속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5년 1월 21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강도 혐의 및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였으나 동년 3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같은 혐의로 징역 12년 형을 받았다. 복심법원 판결문에는 당시 30세이고 직업이 잡화상(雜貨商)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제15지부 통신원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잡화 행상으로 위장하면서 비밀리에 활동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판결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으나 고초를 이기지 못하고 1929년 10월 25일 끝내 순국하였다. 1929년 11월 9일 모교인 사립 창동학교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추도식을 보도한 『민성보(民聲報)』에는, “백의인(白衣人)의 활로(活路)를 열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분투노력(奮鬪努力)하다 악독한 일본 경찰의 손에 체포되어 경성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고 기술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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