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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金浩基

1905. 4. 17 ~ 197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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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호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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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康津)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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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강진쟁의 사건
  • · 전남사회운동자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5년 4월 17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군동면(郡東面) 석교리(石橋里, 현 전남 강진군 군동면 석교리)에서 태어났다. 20살 때 강진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수료하고, 이후 경성부기학교(京城簿記學校)에 진학해서 약 6개월을 다녔으나 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다. 1928년 관북지역 수해동포를 돕기 위해 지역의 청년인 오기종, 조정구(趙政九) 등과 함께 소인순극단(素人巡劇團)을 조직하였고, 군동면을 돌며 모은 희사금을 조선일보 병영지국을 통해 관북수해구제후원회로 보냈다. 이어 1931년 11월 16일부터 강진군동소작회(康津郡東小作會)에서 읍내 지주들에게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고 사유를 진정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11월 28일 소작인 200여 명과 함께 카마다산업주식회사(鎌田産業株式會社) 목포지점 강진출장소에 가서 소작료를 내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회사가 이를 거부하자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이때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혀 12월 9일 광주지방법원 장흥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2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폭력행위, 상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이유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1933년 9월 4일 마성만(馬成萬), 마상춘(馬相春) 등과 함께 조정구의 집에 모여서 무산농민 대중을 지도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단체를 설립하기로 협의하였다. 같은 해 11월 29일 강진군 군동면 금사리(檎沙里)에 있는 김만석(金萬石)의 집에 모여 무산 아동에게 공산주의를 가르치고, 장래의 투사를 양성하기 위한 개량서당을 군동면 쌍덕리(雙德里)에 설치하기로 협의하였다. 다음 날인 11월 30일 강진군 군동면 금사리에 있는 최신구(崔信九)의 집에 모여 이듬해 시행될 예정인 군동면 호안(護岸) 공사 때 노동자 농민을 선동하여 전년도의 저임금에 대한 인상 운동과 노동쟁의를 통해 동지를 모으기로 협의하였다. 하지만 1934년 2월 중순 ‘전남사회운동자협의회 사건’으로 해남, 완도, 영남 등지에서 558명이 검거되었을 때 함께 붙잡혔다. 이로 인해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제2조와 형법 제55조가 적용되었고, 거기에 1932년의 사건으로 형기가 가중되어 징역 1년 6월(미결 구류 일수 중 545일 본형에 산입)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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