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창
金瑬昌1900. 3. 27 ~ 1945. 12.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관동자유노동자조합
- · 일본적색구원회
- · 일본반제동맹
- · 노농무산협의회
- · 건달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900년 3월 27일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주군(榮州郡)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영주군 이산면(伊山面) 석포리(石浦里) 749번지이다. 이명으로 김완(金莞), 김자진(金子進), 김창하(金昌河)를 사용하였다. 1922년 4월 노동을 목적으로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갔다. 여기서 자유노동과 폐품 처리 등의 노동 활동을 하였다. 1927년 관동자유노동자조합(關東自由勞動者組合)에 가입하여 노동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31년 4월 공산주의자였던 임일수(林一秀)·김전구(金畑求) 등을 통해서 일본적색구원회(日本赤色救援會) 동경지부 성서지구(城西地區) 낙합반(落合班)에서 활동하였다. 1934년 1월, 일제가 일으키고 있는 전쟁에 반대하고 제국주의를 타도할 목적으로 일본반제동맹(日本反帝同盟)에 가입하여 낙합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36년 8월 일본반제동맹이 와해되자, 노농무산협의회(勞農無産協議會) 나카노지부(中野支部)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1941년 6월 11~12일경 이종문(李宗文)·정갑진(鄭甲辰)·김석영(金錫永)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건달회(建達會)에 가입하였다. 그 해 6월 18일 하반(河畔)에서 동료들과 회합을 가졌다. 여기서 일제를 타도하는데 필요한 폭탄과 무기 등의 입수 방법·회원 확보·의열시기 등을 논의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무기 구입 및 자금 확보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1943년 11월 15일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공판에 회부되었다. 1944년 9월 30일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으나, 이미 3년 9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옥고를 치른 상태였다. 이후 고향으로 귀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