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植
植1896. 11. 4 ~ 1922. 6.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창기독교청년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북청군 신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6년 11월 4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신창면(新昌面) 신창리(新昌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북청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에도 독립운동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금에 나섰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1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김기석(金基錫)·황하운(黃河雲)·조인환(曹寅煥)·최문진(崔文鎭) 등과 함께 북청군 신창면 신창리 김원섭(金元涉)의 집에서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300매를 인쇄하였다. 3월 12일 신창리 소재 신창헌병분견소와 이틀 날인 13일 신창시장에서 주민 약 200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20년 8월, 동아일보 북청지국 신창지국장이 되어 신창면의 청년활동을 언론에 다수 소개하였다. 같은 달에 신창 만세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신창기독교청년회(新昌基督敎靑年會)를 창립하여 총간사가 되어 매주 토요일마다 강연회를 열었다. 그 해 12월 2일 전국 청년단체들의 통일적 청년운동 기관인 조선청년연합회(朝鮮靑年聯合會) 창립대회에 신창기독교청년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신창기독교청년회는 1920년 9월 신창리의 교회안에 여자야학회를 설립하고, 조선어·산술·성경을 2개반으로 나누어 가르쳤다. 당시 여자야학회의 회원은 50명이었다. 1921년 3월 23일 제2회 정기총회에서는 임시회장 자격으로 청년회를 주도하여 매월 3회 토론회와 강연회 1회 개최, 여자야학의 완전한 설비, 주일학교 발전을 위하여 교장 1인과 교사 2인 선정 등에 대한 사항이 결정되었다. 이러한 공개적인 민족운동과 별개로 은밀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하는 활동도 하였다. 1920년 7월 임시정부 요원인 이용(李鏞)이 상하이(上海)에서 간도로 가지고 와서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를 거쳐 전달한 독립공채증서와 인쇄물을 고용환과 함께 받았다. 10월까지 홍원군 등지에 부유한 사람들에게 인쇄물을 배포하고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 해 12월 북청경찰서에 붙잡혀 이듬해 2월 가택수색 당시 1,000원권 10매, 500원권 20매, 100원권 200매 등 합계 40,000원 독립공채증서와 동지들과 왕래한 20여 매의 비밀문서 등을 집안 처마 밑 장독에 숨겨두고 있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1922년 6월 27일 풀려난지 3일 만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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