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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俊燁

俊燁

1920. 8. 26 ~ 201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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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俊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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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강계(江界)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강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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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2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0년 8월 26일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시중면(時中面) 외시천동(外時川洞)에서 김종걸(金宗傑)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유년시절 강계군 시중면의 보통학교에서 수학 후, 1935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新義州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학병 출신으로 한국광복군에 입대 후 국내정진대 훈련에 참여하였다.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동양사학과에 진학하여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 평양사단(일본군 39여단 42연대)을 거쳐, 1944년 2월 16일 중국 쉬저우(徐州)지역의 일본군 스가다(柄田)부대에 배치되었다. 대허가(大許家)에 있는 경비중대에 배치된 후, 1944년 3월 하순 탈출하여 중국 중앙군 소속 유격대에 합류하였다. 뒤이어 탈출해 온 장준하(張俊河)·윤경빈(尹慶彬) 등과 중국 유격대를 떠나, 1944년 9월 10일 안후이성(安徽省) 린취안(臨川)에 도착하여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 일명 한광반)에 입교하였다. 한광반은 징모 제6분처의 주임인 김학규(金學奎)가 중국군 제10전구 사령관인 탕언보(湯恩伯)의 지원으로 린취안의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단에 설치한 것이다. 학병 출신들인 장준하·윤경빈 등과 함께 1944년 5월부터 실시된 교육에 합류하여 그 해 11월까지 군사간부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받는 동안 장준하 등과 『등불』 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한광반 졸업생 중 35명의 동지들과 함께 김학규의 양해를 얻어 충칭(重慶)행을 결행하였다. 이들은 1945년 1월 31일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하여 토교대(土橋隊)에 임시 수용되었다가, 임시정부 경위대·광복군총사령부·시안(西安)의 광복군 제2지대(지대장 이범석(李範錫)) 등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이때 장준하·노능서(魯能瑞) 등 19명과 시안의 제2지대 제1구대 제3분대에 배속되었다. 당시 광복군 제2지대는 미국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 군사합작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계획은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으로 구체화되었다. 작전 계획에 따르면, 서울·부산(釜山)·평양(平壤)·신의주(新義州)·청진(淸津) 등지에 광복군 대원을 침투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해군기지·병참선·비행장을 비롯한 군사시설, 산업시설, 교통망 등에 대한 정보수집이었다. 또한 국내 지하운동의 규모와 활동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한국인의 반일 봉기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훈련 장소는 시안 남쪽의 두취(杜曲)였다. 훈련은 파견된 미국인 교관들이 맡았으며, 책임자는 사전트(Clyde B. Sargent) 대위였다. 1945년 8월 4일 3개월간의 제1기생 훈련이 종료되었는데, 참여 인원 50명 가운데 훈련을 수료한 인원은 그를 비롯한 38명이었다. 일본의 항복으로 8월 14일부터 예정된 제2기생 훈련은 취소되었다. 작전 계획에 따르면, 도(道) 단위로 활동구역을 정하고 공작반을 편성하였는데, 이때 제3지구대 강원도반 반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항복으로 국내진입작전이 좌절되자, 광복군에서는 ‘정진대(挺進隊)’ 파견을 추진하였다. 선발대 성격의 정진대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정보수집과 국내활동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광복군 정진대는 OSS 작전팀과 함께 파견되었는데, 제2지대장 이범석과 김준엽·장준하·노능서의 4명으로 구성되었다. OSS측은 책임자 버드(Willis H. Bird) 대령을 포함한 18명이었고, 한국인 미 공군장교 정운수(鄭雲樹)가 통역으로 참여하였다. 정진대가 시안을 출발하여 국내진입을 시도한 것은 일제의 정식 항복 선언이 있던 다음날인 8월 16일이었다. 산둥반도까지 진출했으나 일본군의 공격으로 되돌아왔다가, 8월 18일 다시 시안을 출발하여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하였다. 하지만 무장한 일본군이 ‘도쿄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못했다’면서 위협함에 따라, 8월 19일 산둥반도를 거쳐 8월 28일 시안으로 되돌아왔다. 광복 후 환국하여 역사학자로 활동하며 고려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1년 6월 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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