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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金永逸

1925. 9. 1 ~ 201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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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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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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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3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5년 9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덕달면(德達面) 육성동(六星洞, 현 정주시 오성리)에서 출생하였다.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를 다니다가 1943년 12월 오산중학교 동지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중국 쉬저우(徐州)에서 애국청년 규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11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안후이성(安徽省)과 푸양(阜陽)에서 병력을 모집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당시 이름은 징모 제6분처로, 지대장 김학규(金學奎) 의 휘하에서 다양한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기관지 『빛』을 발간하는 등 홍보활동과 함께 초모(招募) 동지 호송과 연락장교로 활동하였다. 기관지 『빛』은 일제의 만행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한국광복군의 활동, 일본군의 패전상 등을 소개하고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내용을 주로 담았다. 박상기(朴相基)·한이윤(韓伊尹)·문수열(文洙烈)·김문택(金文澤)·박재곤(朴載坤) 등과 함께 『빛』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목판에 찍어 발간하였다. 1945년 1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연락장교 김우전(金祐銓)은 사만(謝灣)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파견대장 버치(John M. Berch)를 만나 상호 부대의 임무에 대해 소개하고 일본군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였다. 김우전은 버치와 여러 차례 만나 한국광복군과 연합한 첩보공작을 논의하였다. 한국광복군에게 무전 통신 기술을 교육한 뒤 일본군 점령지구에 잠입시켜 군사정보를 얻어 무전으로 송신하는 것이었다. 김우전은 한미연합 첩보공작 계획을 김학규 지대장에게 보고하였다. 김학규 지대장은 김우전·버치와 함께 쿤밍(昆明)으로 이동하여 미 제14 항공단 사령관 첸놀트(Claire Lee Chennault, 1893–1958) 장군과 한미 연합 공동작전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 결과 한국광복군이 국내에 진입해 첩보작전을 수행한다는 독수리 작전을 위한 OSS 훈련을 실시가 결정됨에 따라 OSS 측은 광복군 훈련생을 선발하였다. 김용관(金容寬)·한이윤(韓伊尹)·이영순(李英淳) 등과 함께 OSS 훈련생으로 선발되었다. 이들 대원들은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했을 때 내부에서 호응하여 함께 작전을 펼치기 위해 5월 중순부터 OSS 특수 훈련을 받았다. 이들 대원들은 특수훈련을 마친 뒤 국내 정진작전을 준비하던 중,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으로 OSS 합동작전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총책임자 엄도해(嚴道海)와 훈련대장 윤영무(尹永茂) 등과 함께 8월 22일 본부로 귀대하였다.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을 역임한 뒤 광복회 회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1년 2월 28일 사망하였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 뒤 2011년 3월 4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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