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익
權相翊1863. 2. 26 ~ 1934. 11.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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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3년 2월 26일 외가인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리(安德里, 현 청송군 안덕면)에서 아버지 권기연(權祺淵)과 어머니 함안 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찬수(贊粹), 호는 청산(晴山)·성재(省齋)이다. 원래 조상 대대로 거주해온 곳은 봉화군 내성면(乃城面) 유곡리(酉谷里)이다. 충재(沖齋) 권벌(權橃)의 13대손으로, 명성황후(민비) 시해 사건 이후 결성된 제1차 안동 의병 의병장 권세연(權世淵)의 족질(族姪)이다. 학문적으로는 퇴계학파의 정맥으로 일컬어지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제자였다. 1919년 3월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김창숙(金昌淑) 등이 유교계의 독립 청원 운동인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을 진행할 때 이에 동참하여 서명하였다. 순위는 서명자 137명 중 18위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일로 6월 19일 구류되고 7월 7일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이 내려져 석방되었다. 파리장서운동이 좌절된 이후에도 유교계는 중국 정부를 상대로 독립 청원 운동을 이어나갔는데, 1920년 11월 이중업(李中業)이 중국 난징 정부 및 군벌을 상대로 제2차 독립 청원 운동을 추진할 때 난징 정부 대통령 쑨원(孫文)에게 보내는 「독립청원서」를 집필하였다. 그러나 중국에 파견할 예정이던 이중업이 출국 직전 갑자기 사망함에 따라 좌절되었다. 1920년대 중반 외교 독립론은 퇴조하고 장기적인 전략으로 전쟁 준비론이 부각되었다. 1925년 김창숙은 내몽골 지역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로 계획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 20만 원을 모으고자 비밀리에 입국하였다. 이때 김창숙을 지원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나 1926년 6월 4일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저서로는 문집인 『성재전집(省齋全集)』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봉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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