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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교묵

南敎默

1891. 1. 12 ~ 194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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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교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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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영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9) 1891년 1월 12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인량동(仁良洞)에서 태어났다. 자는 자용(子容)이다. 일찍이 집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영덕 지역 만세운동은 서울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온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平洞)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권유로 권태원(權泰源)·정규하(丁奎河)·남효직(南孝直)·남여명(南汝明)·권상호(權相浩)·박희락(朴義洛) 등은 영해면 만세시위를 계획·준비하였다. 1919년 3월 18일 권태원·정규하 등의 권유를 받고 신상문(申相文)·박동활(朴東活)·김탁이(金卓伊)·남응하(南應夏) 등과 함께 영해면 장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리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영해주재소 주임순사 스즈키(鈴木鶴次郞)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스즈키를 비롯한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순사보 등을 구타하였다. 또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순사보, 그리고 영해공립보통학교 교사 배병렬(裵秉烈)을 비롯하여 학생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영해주재소·영해공립보통학교·영해면사무소·영해우편소 등의 건물과 집기, 각종 서류를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영해경찰서 서장 시게요시손(茂義孫)을 비롯한 순사와 순사보를 폭행하고, 본서로 돌아가는 이들을 추격하여 응징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9일에도 아침부터 지역민 7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일본 군경은 강제 해산에 실패하자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8명이 사망하였다. 일본 군경은 이틀에 걸친 만세시위의 주도자와 가담자에 대한 검거 작전에 들어갔다. 이때 시위에 참여하였던 다수의 주민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공무집행 방해·건조물 손괴·기물 손괴·공문서 훼기·상해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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