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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호

南光鎬

1901. 6. 3 ~ 1967.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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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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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蔚珍)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원남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901년 6월 3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금매리(金梅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남외출이다. 1919년 4월 경상북도 울진군 원남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울진군의 만세시위는 행곡면(杏谷面)의 장식(張植)이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하면서 얻은 「독립선언서」를 매화리(梅花里)에 살던 친구 윤병관(尹炳寬)에게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한편 북면(北面) 고목리(古木里)의 전병겸(田炳謙)은 당시 서울 중앙감리교회의 전도사였던 외조부로부터 “교회가 만세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비밀리에 건네받았는데, 이 일 또한 만세운동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비록 장식이 울진의 헌병분대에 곧바로 붙잡히기는 하였으나, 윤병관과 전병겸의 주도 아래에 울진군의 만세운동은 준비되어 갔다. 4월 5일 윤호규(尹鎬逵)·최중모(崔重模)·윤정규(尹定逵)·최효대(崔孝大) 등은 윤병관 집에 모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튿날 전병겸은 울진면(蔚珍面) 고성리(古城里)의 주진휴(朱鎭烋)와 함께 다가오는 4월 11일에 원남면 매화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4월 9일 주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모의 준비에 참여하여 시위 계획을 논의하고 태극기와 ‘독립만세’가 적힌 현수막을 만들었다. 다음 날인 4월 10일 오전 8시에는 윤상흥(尹相興)과 전학복(田學復) 등 6명이 매화리 남수산에 올라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4월 11일 오후 3시 매화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약 100명의 시위대가 만세시위에 나서자 일본 헌병은 즉각 검거에 들어갔다. 이날 만세시위를 이끌다가 붙잡혔다. 1919년 4월 19일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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