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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一鎭

一鎭

1899. 3. 3 ~ 1969.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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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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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정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9년 3월 3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용두리(龍頭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청양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백곡리(白谷里) 홍범섭(洪梵燮)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서울 종로(鐘路)의 여관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홍범섭은 그것을 읽어보고, 만세시위 취지에 공감하여 고향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겠다고 결심하였다. 귀향한 홍범섭은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 이전부터 교류하던 인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독립선언서」를 함께 읽고, 이들과 만세시위를 추진할 것을 협의하였다. 홍범섭은 만세시위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동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추가로 임창순(任昌淳)·임철재(任哲宰)·김세환(金世煥)·김필현(金弼鉉)·윤구학(尹龜學)·이건호(李建鎬)·이태호(李台鎬)·조종원(趙鍾元)·박춘서(朴春西)·윤기중(尹箕重)·윤봉학(尹鳳鶴)·이건직(李建直)·(建植)·우달명(禹達明) 등을 적극적인 동조자로 확보하고, 만세시위를 계획·추진하였다. 이들은 정산시장의 장날인 4월 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비밀리에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5일 오후 3시 정산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이 만세시위를 강제 진압하는데 나서자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가담하였다. 일본 헌병이 30여 명의 시위대를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하자 7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앞에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결국 일본 헌병의 발포로 권흥규(權興圭)가 사망하였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아침 주민들과 함께 권흥규의 시신을 인수하여 운구하기 위해 헌병분견소 앞으로 갔다.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을 운구 행렬의 선두에 세우고 고인의 자택으로 향하는 운구에 참여하였다. 운구 행렬을 따르던 1천여 명은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공주에서 파견 나온 일본 헌병이 발포하면서 또다시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청양헌병분견소에 붙잡혀 1919년 4월 24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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