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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명

金重命

1886. 5. 8 ~ 1920.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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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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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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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지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86년 5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동천동(東川洞)에서 태어났다. 본적과 거주지는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황장동(黃腸洞)이다. 종교는 기독교였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영덕군 지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만세운동은 기독교계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영덕군 지품면 낙평동(洛坪洞) 예수교 장로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은 평양으로 가던 중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기독교도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지품면 원정동(院前洞) 예수교 장로교회 영수(領袖) 주명우(朱明宇)에게 김세영의 거사 계획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주명우에게 만세시위 의거 소식을 전한 후 함께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기독교인 10여 명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3월 19일 오전 11시 30분 원전동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라고 기록된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중과 더불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주재소에 이르렀다. 주명우와 함께 주재소 앞에서 한국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때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 경찰에 의해 붙잡혔고 군중은 강제 해산되었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9일 대구복심법원에 의해서 기각되었다. 이에 재차 불복하여 “조선인으로 조선 독립을 기뻐하고 축하의 만세를 부른 것뿐이며 보안법 위반 행위는 없다”는 취지로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0년 4월 28일 고종의 아들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과 일본 왕실의 이방자(李方子)와의 결혼에 따른 은사령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 7월 29일 수형 생활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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