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규
金仲圭1888. 2. 8 ~ 1946. 5.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창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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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2월 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갈상동(葛上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영덕군 창수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영덕군의 만세시위는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의 교회 조사(助事)로 교회의 도움을 받아 평양(平壤)의 신학교에 입학하고자 유학길에 올랐던 김세영(金世榮)에 의해 시작되었다. 김세영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유학을 포기한 채 고향으로 돌아와 낙평동 교회의 구세군 참위로 있던 권태원(權泰源)을 만나 영해면(寧海面)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런데 김세영은 권태원을 만난 이튿날인 3월 13일, 일본 경찰의 예비검속에 바로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권태원은 김세영의 말에 따라 병곡면(柄谷面) 송천동(松川洞) 교회의 조사 정규하(丁奎河) 등과 만나 영해면·병곡면·축산면(丑山面)·창수면 등지의 기독교인과 유림세력 등을 규합하면서 시위계획을 구체화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 영해면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영해면 북서쪽에 위치한 창수면의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 10여 명도 영해면 만세시위에 참가하고자 길을 떠났다. 하지만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신기동(新基洞)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한 후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튿날인 3월 19일,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시위대에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를 습격하여 사무실, 객사, 주임순사 숙사의 벽과 천장 등을 파괴하였다. 나아가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숙사의 남쪽 벽을 돌로 파괴하는 데에 가담하였고 오후 7시 마을로 돌아갔다. 이후 경찰에 붙잡혀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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