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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周鉉

周鉉

1876. 9. 11 ~ 195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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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周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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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6년 9월 1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가산리(佳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에 전개된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가산리의 민영갑(閔泳甲)이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이후 준비과정에서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동지가 되어 추진되었다. 가산리에서는 4월 1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소는 임시 연극공연장이 설치될 이원교(李元交)의 집이었다. 이에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 공연에 많은 주민들의 참석이 예상됨으로 이를 기회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연극 공연의 당일 민영갑, 이재만 등도 연극 관람을 가장하여 관객으로 참석하였다. 연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오후 8시, 민영갑과 동지들은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가산리의 주민 수십 명이 즉시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곧바로 이원교의 집으로 일제 경찰이 급파되었으나, 이날의 시위는 체포자 없이 해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날인 2일에 전날의 연극공연장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 들었고, 아울러 민영갑, 이재만 등을 중심으로 가산리의 주민들이 또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가산리 주민들이 홍성시장으로 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홍성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한 다른 지역의 주민들도 동참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 직후 만세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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