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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萬

永萬

1863 ~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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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永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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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수안(遂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수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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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관련 사건

  • · 수안군 수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3)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공포면(公浦面) 마산리(馬山里) 출신이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57세로 186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수안지역에서 동학 신자가 급증하던 시기인 1902년 동학에 입교하였다. 1914년 7월부터 1917년 2월까지 천도교 수안교구의 교구장을 역임하였다. 수안지역 천도교의 중심 인물로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는 짚신장수를 하며 전도사(傳道師)를 맡고 있었다. 1919년 2월 26일 대교당 건축비 성금 670원을 반환받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독립선언 계획을 알게 되었다. 이에 2월 28일 수안으로 돌아와 교구장 안봉하(安鳳河)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어 다음 날 3월 1일 저녁 곡산(谷山)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이 수안교구 공선원(共宣員)이자 평의원 이종숙(李宗淑)의 집을 방문하여 「독립선언서」 를 전달하는 한편, 중앙총부의 만세시위 전개 명령을 전달하였다. 이에 수안교구 교구장 안봉하와, 자신을 비롯한 전 교구장 홍석정(洪錫禎)과 홍순걸(洪淳杰), 그리고 공선원 나찬홍(羅燦洪)과 최용식(崔鎔植), 전교사 한청일(韓淸一) 등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자들과 모임을 갖고 적극 호응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일 시일(侍日, 천도교의 일요일)을 맞아 수안교구 교구실에서 안봉하, 홍석정, 나찬홍, 최용식, 한청일, 이영철(李永喆), 이달하(李達河), 나용일(羅龍日), 홍두옥(洪斗玉) 등과 회합하였다. 이 모임에서 3월 3일 천도교인들을 모아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과 헌병 분대를 넘겨받을 것, 그 실행 방법은 홍석정과 한청일이 담당할 것 등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행되기 전에 수안헌병 분대에 탐지되었다. 3월 2일 오후 교구실로 들이닥친 헌병들은 수색을 시작하였고, 당시 돗자리 밑에 「독립선언서」 를 깔고 앉아 있었는데 이것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안봉하, 최용식, 나찬홍 등 11명과 함께 교구실에서 붙잡혀 수안헌병 분대로 끌려갔다. 당시 붙잡히지 않은 홍석정, 한청일, 이영철 등은 계획대로 3월 3일에 130~140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수안헌병 분대 앞마당까지 진출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3월 3일 해주지방법원 서흥지검 검사분국에서 신문조서를 받았다. 수안면의 만세시위는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시위’와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및 원곡면 시위’와 더불어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한 폭동이라고 판단되어 내란죄를 적용받게 되었다. 당시 내란죄는 고등법원에서 담당했기 때문에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수안면 만세시위 사건은 해주지방법원에서 고등법원으로 이관되었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의 최종 예심에서 내란죄로 인정되지 않았고, 사건 관할이 경성지방법원으로 변경되었다. 그 해 8월 7일 경성지방법원 제1형사부에서 사건 변호사인 허헌의 ‘공수불수리’ 신청이 수용되어 ‘본 건 공소를 수리하지 않음’으로 되었다. 다시 검사가 항소를 제기하였고,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450일 전시 형기에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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