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응선
文應善1895. 11. 17 ~ 1945. 5.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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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9) 1895년 11월 17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해주면(海州面) 남동리(南東里)에서 문성빈(文成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비밀결사인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남만주 펑톈성(奉天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기반을 둔 대한독립단의 단장 조맹선(趙孟善)이 파견한 김기한(金基漢)이 해주 읍내에 지단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었던 정순경(鄭順敬)의 권유로 이성룡(李成龍)·이수영(李壽永)과 함께 해주지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6월 대한독립단 특파대장 이명서(李明瑞)에 의해 군자금 모집, 일본인 관리 처단, 친일파 응징 등을 목적으로 이근영(李根榮)·박기수(朴基洙)·박지영(朴枝英)·고두환(高斗煥)·민양기(閔良基)·주의환(朱義煥)·원사현(元士玄)·이지표(李芝苞) 등 9명이 국내로 파견되었다. 이들은 평북 박천군에서 박중서(朴重緖)와 변춘식(邊春植) 등 동지를 모집하여 황해 방면으로 내려가다가 평남 대동군 용산면(龍山面)에서 검문을 실시한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였다. 이들이 1920년 8월 황해 은율군에서 친일군수 최병혁(崔丙赫)을 처단하고 일본군의 수색을 피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던 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 활동을 하였다. 대한독립단 단원 변춘식은 해주지단에서 활동하던 이성룡·이수영에게 이명서 일행이 독립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해주 방면으로 오니 그들의 숙소를 선정하고 독립자금을 모아두자고 요청하였다. 이때 이성룡·이수영과 협의하여 그들의 거처를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천군 초리면(草里面) 노성우(盧聖祐)의 집에 은신해있던 이들이 황해도 경찰부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면서, 그들을 숨겨준 혐의로 함께 붙잡혔다. 1921년 8월 4일에서 5일까지 이틀에 걸쳐 해주지방법원에서 공판이 열렸는데, 한국인 방청자만 2천여 명이 될 정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21년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 공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및 범인장닉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1921년 11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1심과 같은 형을 언도하자, 다시 이에 불복하여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다. 1922년 2월 9일 상고가 기각되어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 1922년 12월 22일 만기출옥 하였다. 옥고를 치른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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