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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삼

文永三

1916. 4. 12 ~ 194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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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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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용천(龍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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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916년 4월 12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양광면(楊光面) 망양동(望洋洞)에서 태어났다. 1917년 만주로 이주하였다. 17세 되던 해인 1931년에는 남만주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국민부(國民府)에 가입하였다. 국민부는 1929년 참의부(參議府)·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 등 세 단체가 통합하여 조직되었다. 국민부는 공보활동·교육·농민운동 등 만주지역에서 한국인 사회의 자치 행정만을 담당하는 것을 표방하였다. 국민부에 가입해 이등졸(二等卒)로 활동했는데, 만주 랴오닝(遼寧)에 위치한 싱징현(興京縣)의 한국인 부락에서 의무금을 징수 활동 등을 하다가 국내로 들어왔다. 국내로 들어온 이후에는 마찬가지로 만주에서 국민부원으로 활동하다 국내로 들어온 남봉준(南鳳俊) 등과 함께 활동을 계속하였다. 1935년 6월부터 양관일(梁貫一)·원용준(元龍俊) 등과 함께 총 4명의 인원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성면(古城面) 일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활동 당시에는 모형 권총과 단검 등으로 무장하고, 애국혁명군(愛國革命軍)을 표방하였다. 1935년 7월 26일에는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의 부호 박효정의 집에서 군자금 조달 활동을 벌였다. 다음날인 7월 27일에는 의주 읍내에 거주하는 친일 부호 최창학(崔昌學)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징수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평북 구성으로 이동하기 위해 의주군 석하역(石下驛)에서 열차를 타려다, 그곳에 근무하고 있던 주재소원에게 붙잡혔다. 붙잡힌 이후 강도를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8년을 받았다. 1941년 2월 7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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