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취방
文就邦188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간도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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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함경북도 종성군(鍾城郡) 풍곡면(豊谷面) 풍촌동(豊村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 주소는 온성군(穩城郡) 영충면(永忠面) 회덕동(懷德洞)이고 직업은 교사였다. 1919년부터 간도대한국민회(間島大韓國民會, 일명 북간도대한국민회)에서 활동하였다. 간도대한국민회는 1919년 만세운동 직후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서 간도 독립운동기성총회를 모체로 해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였다. 간도대한국민회는 3월 말에 옌지(延吉)·허룽(和龍)·왕칭(汪淸) 등 3개 현(縣)을 5개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각 구역에 지방총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중앙총회와 지방총회의 간부들을 국내 각 지방에 파견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지휘하고 무장투쟁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여 독립운동의 역량 증대를 시도하였다. 1919년 12월 간도대한국민회 동부지방총회(東部地方總會) 회장이었던 양도헌(梁道憲)으로부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 모금 지시를 받았다. 이에 1920년 1월경 종성군 화방면(華方面) 화방동(華方洞) 소재한 문우명(文佑明)으로부터 군자금 20원을 지원받아 양도헌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온성군 영충면 회덕동에 거주한 오규익(吳奎益)에게 경원군(慶源郡) 경원면(慶源面) 심잠동(沈岑洞)으로 이동하여 주변 유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여 간도대한국민회에 보낼 것을 지시하는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 검사국 심문과정에서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간도대한국민회에 가입하여 정당한 활동을 하였다”고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1921년 5월 31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1년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 1924년 1월 26일 ‘칙령(勅令) 제10호’에 의해 형량이 3년 9개월로 감형되었다. 출옥 이후의 행적과 사망 일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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