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선
文昌善1892. 10. 1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92년 10월 11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강동면(江東面) 상리(上里)에서 태어났다. 1921년 당시 30살이었다. 국내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였다. 1920년 5월 강동군 고천면(高泉面)에서 김원준(金元俊)·황면준(黃冕濬)·황사중(黃士仲) 등과 협의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고 무장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에서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을 조직하였다. 단원들과 함께 정의(正義)·인도(人道)에 의지하여 세계를 평화케 하고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자유(自由)·평등(平等)을 얻기 위해 독립을 목적으로 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1920년 7월 황사중·황면준 등과 함께 권총을 휴대하고 강동군 삼등면(三登面)의 부호(富豪) 백치운(白致雲)을 찾아가 임시정부 후원금 및 군자금으로 40원을 받았다. 1921년 2월에는 김원준과 함께 고천면 광탄리(廣灘里)의 부호 황재갑(黃在甲)을 찾아가서 한국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군자금 1,000원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황재갑의 돈이 여유치 않자 150원만을 받아서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 평남 총무 김봉규(金琫奎)를 통해 임시정부에 송부하였다. 3월 30일에는 김원준과 함께 성천군 태극면(太極面) 부호 김리규(金利奎) 집을 찾아가서 군자금을 받았다. 4월 20일에는 황사중과 함께 성천군 융중면(隆中面) 일대에서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에도 평남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광복청년단(光復靑年團),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와 협력 체제를 유지하여 임시정부 후원금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5월경 강동군 정호면(晶湖面)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강동경찰서의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으로 이송되었다. 1921년 9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0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 당했으며,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1월 17일 기각 되었다.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2년 5월 3일 경성감옥으로 이감되었다. 1924년 「칙령(勅令) 제10호」에 의거하여 7년 6월로 감형되었다. 1927년에도 「칙령 제12호」에 의해 징역 6년 4월 10일로 감형되어 10월 25일에 풀려났다. 출옥 이후 활동은 확인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