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선
文性善1912. 4. 17 ~ 1991. 7.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암청년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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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2년 4월 17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영암면(靈巖面) 장암리(場岩里)에서 태어났다. 영암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회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영암에서는 1931년 9월 최판옥(崔判玉)·김판권(金判權) 등의 주도로 청년회가 조직되었다. 최판옥과 김판권 등은 1932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었으나, 일제의 경계가 엄중하여 포기하였다. 이후 6월 4일이 마침 음력으로 치면 5월 1일 ‘노동절’ 기념일이라 하고 시위운동을 위해 농민들을 규합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이날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의 영보정(永保亭)에서 운암리(雲岩里)·노송리(老松里)·영보리·장암리 지역 청년 70여 명을 규합하고 오후 4시 그곳 뒷산에서 산유회(山遊會)를 열고 행사를 결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운암리와 백계리(栢溪里)의 소작 문제에 대해 시위할 것과 소작권 이동을 방지할 것 등을 결의하였는데, 이때 적극 찬동하였다. 이들은 선두에 붉은 기를 앞세우고 나팔을 불며 큰 북을 두드리고 노동가를 부르면서 산을 내려와, 대오를 정비하여 운암리 방면으로 시위운동을 지속하였다. 이들은 지주의 집을 습격하고 ‘소작쟁의 만세’를 외쳤고, 지주의 고용인을 꾸짖고 구타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가택침입,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30원에, 벌금을 완납치 못할 경우 30일 간의 노역장 유치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34년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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