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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관

魯晶瓘

1875. 6 ~ 193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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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노정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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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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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5년 6월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선천면(宣川面) 창신리(昌信里)에서 태어났다. 선천교회 장로로 활동하며 잡화상을 운영하던 중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전덕기(全德基) 등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평북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신민회 회원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실력 양성에 주력하였다. 1910년 12월 일제는 ‘안악사건(安岳事件)’을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암살미수사건으로 조작하여 신민회를 탄압하였다. 안악사건은 1910년 11월 안명근(安明根)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붙잡힌 사건이다. 이를 빌미로 일제 경찰이 1911년 9월 신민회 간부, 기독교 지도자, 교육자들을 체포할 때 함께 붙잡혔다. 그 뒤 동료 104명과 함께 기소되어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모살 미수로 징역 6년을 받았다.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여 1913년 3월 20일 원판결 취소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1913년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그동안 2년간의 옥고를 겪었다. 1922년 3월 반도고학생친목회(半島苦學生親睦會) 강연단의 강봉헌(姜鳳漢)·장세담(張世淡) 등이 선천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자 10원을 동정금으로 기부하였다. 그 해 9월 보성여학교(保聖女學校)를 설립하였으며, 11월 수재로 고통 받는 황해도 지방 이재민을 돕기 위해 수해동정회를 조직하고 동정금 마련을 위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강연회 사회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선천기독교청년회 회원으로서 10원을 기부하였다. 1923년 4월 선천면의 입학난을 해결하고자 조직된 면립보통학교설립위원회 위원에 선정되었다. 선천식산조합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5년 3월 양전백(梁甸伯) 목사가 퇴임하자 부양회(扶養會)를 조직하여 양전백과 그의 가족을 부양하였다. 그 해 7월 선천식림조합 감사로 선출되었다. 1926년 6월 단오날에 선천기자단 후원으로 개최된 선천시민육상경기대회 회장으로서 활동하였다. 1933년 8월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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