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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석

朴周錫

1864. 2. 17 ~ 19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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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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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珍島)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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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법정사 항일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64년 2월 17일 아버지 박경림(朴京林)과 어머니 이소사(李召史)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전라남도 진도군(珍島郡 )동면(東面, 현 고군면) 상리 출신이라 전한다.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이었다는 외손의 증언도 존재한다. 이명으로 박명수(朴明洙)을 사용하였고 박처사(朴處士)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14세 되던 해에 스님을 따라가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후 의병항쟁에 참여하였고 제주도(濟州島)로 건너와 법정사(法井寺)에서 수도하였다. 이곳에서 법정사 승려 김연일(金蓮日) 등과 교류하며 1918년 10월 7일 제주도 법정사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오랜 기일에 걸쳐 준비되었다. 주도 세력들은 1914년부터 법정사 법회를 통해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일본의 국권침탈의 부당함을 인식시키고 독립의 의지를 설교하였다. 1918년 4월에 법정사의 승려들은 항일운동을 실행할 것을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그 해 7월부터 법정사 신도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과 함께 담당 부서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독립을 위해 일본인 관리와 상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겠다는 요지의 격문과 깃발을 제작하고 몽둥이와 화승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7월 말에 법정사 승려 방동화(房東華)가 찾아와 거사에 동참을 것을 권유하자 이에 응하여 9월 8일 법정사로 가서 항일운동 준비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총지휘자인 승려 김연일(金連日)을 중심으로 좌대장과 우대장으로 지휘부를 구성하였다. 거사는 선봉대장의 지휘 하에 모사(謀師)와 선봉집사·선봉좌익장·선봉우익장·중군대장·후군대장의 조직을 두어 이끌기로 하였다. 이때 모사라는 직책을 맡아 선봉대장 강창규(姜昌奎)와 함께 거사 현장의 진행 상황을 살펴가며 방향을 의논하는 역할을 하였다. 법정사의 정례 예불일을 기회로 삼아 1918년 10월 7일 새벽 예불이 끝나자 선봉대는 사전에 조직해 놓은 부서에 따라 깃발을 들고 화승총과 몽둥이 등으로 무장하여 서귀포(西歸浦)를 습격하기 위해 법정사를 출발하였다. 격문을 통해 각 마을 구장(區長)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축출하고 원래의 한국 시대로 회복하고자 한다는 뜻을 알렸다. 이때 선봉대로 각 마을에서 참여자 모집에 앞장섰다. 도순리(道順里, 현 서귀포시 도순동) 상동에서 사람들을 지휘하여 4~5명씩 조를 이루어 주민들의 참여를 권유하고, 영남리(嶺南里, 현 서귀포시 영남동)로 가서 구장에게 민적부를 받아 장정 25명을 참여시켰다. 영남리에서 서호리(西好里, 현 서귀포시 서호동)와 호근리(好近里, 현 서귀포시 호근동)로 나아가 민적부를 기본으로 하여 장정을 모집하였으나 예상한 수를 참여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러자 강창규와 의논하여 서귀포 습격을 중지하고 중문리(中門里, 현 서귀포시 중문동)의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기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법정사를 출발한 항일운동의 대열은 영남리·서호리·호근리·강정리(江汀里, 현 서귀포시 대천동)·도순리·하원리(河源里, 현 서귀포시 하원동)를 거쳐 중문리까지 나아갔다. 그 사이에 선봉대장 강창규 이하 지휘관들과 함께 주민들을 지휘하여 전선과 전주를 절단하여 일제 경찰의 통신을 두절시켰고, 하원리에서 일본인을 몽둥이와 돌멩이로 구타하여 상해를 입혔다. 그리고 7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중문경찰관 주재소의 기구와 문서를 부수고 건물을 불태웠다. 10월 7일 11시에 총으로 무장한 서귀포경찰관주재소의 기마 순사대가 공격해 오자 거사 참여자들이 흩어지고 체포되었는데, 이때 현장에서 붙잡혔다.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로 체포된 사람들은 제주도에 제주지청 검사분국이 있었음에도 동급기관인 목포지청 검사분국으로 이송되었다. 경찰의 수사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0년 칙령 제120호에 의해 징역 3년 6월로 감형되었고, 수감 2년 6개월여 만인 1921년 7월 24일 목포감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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