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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載喆

載喆

1889. 11. 21 ~ 196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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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盧載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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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扶餘)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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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9년 11월 21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규암면(窺岩面) 노화리(蘆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국권회복과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20년 만주 길림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의 밀명을 받고 국내로 들어온 김영진(金瑛鎭)·조병채(趙炳彩) 등과 협력하여 1920년 말부터 1921년 초 부여 각지의 부호들에게 약 10여 차례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11월 김형만(金亨滿)의 주선으로 이창호(李昌鎬)의 집에서 김영진을 만났다. 김영진은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가져온 ‘경고문(警告文)’, ‘유고문(諭告文)’, ‘군자금 청구 명령서’, ‘군자금 영수증’ 등을 보여주며 함께 독립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자고 권유하였다. 이에 적극 찬동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결의하였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먼저 경고문과 유고문을 부여군 내산면(內山面) 사원리(斯院里) 이규신李(圭信)에게 발송하였다. 이어 김영진으로부터 빌린 권총을 들고 1920년 12월 24일 윤상옥(尹相玉)과 함께 이규신의 집에 찾아가 군자금 1천원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여 현금 1백원과 2백원의 납부금지원서(納付金志願書)를 받았다. 그리고 충화면(忠化面) 청남리(靑南里)에 사는 김영만(金領滿)에게 경고문을 주고 4백원의 납부금지원서를 받아냈다. 12월 29일 혼자서 전북 익산군 용안면(龍安面) 흥왕리(興旺里)에 거주하는 이규석(李圭錫)을 찾아가 군자금을 요구했으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다음 해에도 부여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21년 1월 초에는 이창호·이치국(李致國)와 함께 구룡면(九龍面) 동방리(東芳里) 박남규(朴南圭)의 집에서 1천원의 납부금지원서를 받아냈고, 같은 마을 박창규(朴昌奎)에게도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1월 15일경 김백순(金伯順)과 함께 석성면(石城面) 현내리(縣內里) 이태헌(李泰憲), (李台憲)의 집에 찾아가 1천원의 납부금지원서를 받았고, 또 이치국과 함께 충화면(忠化面) 만지리(晩智里) 김재철(金在喆)에게 찾아가 군자금 3백 50원을 징수하여 김영진에게 전달하였다. 1월 18일경에는 혼자서 임천면(林川面) 구교리(舊校里)에 사는 김명규(金明奎)를 찾아가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1월 28일경에는 이치국과 함께 남면(南面) 대선리(大船里) 염건수(廉健洙) 집에서 2백원의 납부금지원서를 받았다. 이러한 군자금 모집 활동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어 1921년 3월 초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2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9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9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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