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錫中
錫中1875. 2. 26 ~ 1954. 1.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조선민족대동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5년 2월 26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 수기옥정(須奇屋町)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노석중(盧錫仲)이다.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 단원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0년 (음)6월 전남 화순(和順)에 거주하던 노형규(盧衡奎)로부터 신덕영(申德永)을 소개받아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였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의 주도로 조직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동단은 사회각계 각층의 주요 인사를 규합하여 부문별·지역별 조직 구성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아가 본부를 중국 상하이(上海)로 이전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의친왕(義親王) 망명을 추진하던 중 실체가 드러나 조직에 큰 손실을 입었다. 신덕영 등 국내에 있던 대동단 인사는 상하이와 연계하며 조직 재건과 군자금 모집 등을 추진했는데, 광주 지역의 민족지사들이 합류함으로써 대동단은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이때 노형규와 함께 전남 각지의 유력인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20년 7월부터 대동단 총재 김가진(金嘉鎭) 명의의 「포고문」과 대동단 국내총지부장 한부(韓扶) 명의의 「우리 동포 재산가 여러분에게 경고한다」는 군자금 요구서를 전남 광주·화순·담양 등지의 부호들에게 보이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집은 먼저 해당 부호들에게 포고문과 함께 편지를 보내 서면으로 요청한 후, 직접 찾아가 임시정부에 제공할 자금을 수금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같은 해 8월 광주군에 거주하는 이계익(李啓翼)을 읍내로 불러내어 광주지방법원 앞 도로에서 군자금을 요구하여 100원을 수금하였다. 이어 화순·담양 등지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을 계속하던 중 일제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공갈죄로 징역 5년을 받아 항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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