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건
高宗虔1902. 12. 30 ~ 1965. 2.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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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902년 12월 30일 전라남도 제주군 신좌면(新左面) 함덕리(咸德里) 고석준(高石準)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이고, 이명은 삼혈종건(三穴宗虔)이다. 한학을 수학하면서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30년 협성(協成) 청년회가 운영하던 노동야학에서 김두성(金斗性)·김일준(金日準) 등과 같이 활동하였다. 이들은 함덕청년동맹 회원들로 동리에 영향력 있는 한승렬(韓承烈) 등 부녀자들에게 야학(夜學)을 통해 한글을 가르치면서 민족의식과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1931년 1월 15일 함덕리 출신으로 일본 도쿄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한영섭(韓永燮)이 순천당(順天堂)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달 19일 시신이 향리에 도착하자 동지장(同志葬)으로 거행하기로 하였다. 한영섭 집에는 “불평등한 사회를 타도하여 무산계급의 자유를 건설학하려 한 그대는 죽었어도 그대의 주의정신(主義精神)은 동지마다 계승하여 분투할 것이니 고이 진좌(鎭座)하라”라는 내용의 만장(輓章)을 내걸었다. 장례일 당일인 22일에는 대흘리(大屹里) 장지까지 걸어가면서 동지들과 적기가(赤旗歌)를 부르는 한편 ‘한영섭 만세’를 고창하였다. 또한, 동지들과 논의하여 추모비를 세웠다. 비의 표면에 ‘동지 적광(赤光) 한영섭 기념비’라고 쓰고 이면에는 “차디찬 흰빛 밑에 눌리인 무리들아, 고함쳐 싸우라고 피뿌린 동지였다"라고 새겼다. 5월 6일 조천경찰관주재소 순사들은 한영섭 부친 한문옥(韓文玉)을 찾아와 관 속을 조사하겠다고 협박하는 가운데 무덤을 파헤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관 속에서 불온문서가 나오지 않자 오히려 주민들에게 적개심만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앞서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조천경찰관주재소 순사에 의해 김일준·김두생·김재동·양공근·부생종 등과 함께 가택수색당하고 제주경찰서로 압송되고 목포로 이감되었다. 8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하여 12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김일준·양구문(梁龜文)·김진희 등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미결 기간인 약 8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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