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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배

金瑩培

1901. 10. 22 ~ 194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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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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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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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제주도 조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901년 10월 22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현 제주특별자치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형배(金灐培)를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조천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조천리는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이다. 조천 유림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은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선언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조천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6일 그들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일제 당국의 체포를 피해 귀향한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 학생이자 김시범의 조카 김장환(金章煥)으로부터 서울에서의 시위 상황을 전해 들었다. 다음날인 3월 17일 김시범과 김시은·김장환은 모여서 시위계획을 협의하여 조천리 미밋동산(味毛峙)에서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동지를 모았다. 이들이 동지를 모으는 과정에서 김용찬(金容燦)·고재륜(高載崙)·황진식(黃鎭式)·김경희(金慶熙)·김필원(金弼遠) 등과 함께 시위에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시위 날짜는 조천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던 유학자 김시범의 큰형 김시우(金時宇)의 기일인 3월 21일로 합의하였다. 이어 김시범의 의뢰를 받고 대형 태극기 4개를 제작하며 시위 준비도 착수하였다. 3월 21일 자신이 제작한 태극기에 김장환이 ‘독립만세’라고 쓰자, 이를 미밋동산으로 가져가 김시범에게 전달하였다. 이어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천 장터에 가서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조천주재소 및 제주경찰서에서 출동한 30여 명의 일제 경찰에 의하여 김시범·김시은 등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는데, 이해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유지되어 옥고를 치렀다. 옥에서 나온 후 1923년 11월 조천노동단(朝天勞働團)에서 활동한 바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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