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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亨權

亨權

1894. 12. 10 ~ 194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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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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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泗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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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사천군 축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12월 10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읍내면(邑內面) 중선리(中宣里, 현 사천시 사천읍 중선리)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의 행적과 수학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1919년 당시 26세였으며, 사천군 축동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근무하고 있었다.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유생 박재룡(朴在龍)은 자신과 같은 유생들도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 지곡면(池谷面) 정치리(鼎峙里)에서 한문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권도용(權道溶)을 만나 논의하였다. 권도용은 박재룡의 생각에 동의하고 독립운동을 독려하는 문서를 제작하여 유생들에게 배포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박재룡과 권도용은 4월 2일부터 6월 20일 경까지 약 2개월 간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와 「조선독립충고문(朝鮮獨立忠告文)」, 「조선독립가(朝鮮獨立歌)」, 「조선독립경포서(朝鮮獨立警布書)」, 「조선독립책선문(朝鮮獨立責善文)」등의 문서들을 제작하였다. 1919년 6월 27일 경 박재룡은 축동면(杻洞面) 길평리(吉坪里) 강대익(姜大翼)의 집에서 회의를 갖고, 자신과 권도용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이때 근무하고 있던 면사무소로 찾아온 강대익의 권유로 강대익의 집으로 가서 회의에 참여하였다. 이 회의에서 박재룡은 ‘경남유림대회(慶南儒林大會)’를 조직하고 각 지역의 유림들을 방문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권도용과 함께 2개월 간 제작한 문서들을 인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때 강대익과 함께 박재룡의 계획에 찬성하여 그날 밤 강대익의 집에서 축동면사무소의 비품인 등사판과 부속품을 사용하여 요청한 문서들을 각각 230부씩 제작하였다. 그러나 제작된 인쇄물을 배포하기 전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1919년 8월 1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정치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9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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