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동
金爀東1889. 6. 4 ~ 1950. 4.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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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9년 6월 4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에서 태어났다. 1901년에 지품면 낙평동에 교회를 설립하여 예수교 북장로파 영수(領袖)로 활동하였고,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영덕군 영덕면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영덕 지역 만세운동의 주도 세력은 기독교 세력과 기독교·유림의 연합 세력, 그리고 유림 세력의 세 계열로 구분된다. 영덕면의 경우 지품면 원전동(院前洞)의 시위를 기독교 세력이 주도했으며, 영해면(寧海面)·병곡면(柄谷面)·남정면(南亭面)의 시위는 기독교·유림의 연합 세력이, 지품면 신안동(新安洞)과 창수면(蒼水面)의 시위는 유림 세력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초 지품면 낙평동의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을 만나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리고 영덕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에 합의하고, 영덕면 금호동(錦湖洞) 교회 조사 강우근(姜佑根)을 찾아가 이를 전하였다. 강우근이 이에 동의하자, 이후 영덕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3월 17일 이승구(李承玖)·안상룡(安尙龍)·이명언(李明彦)·김태을(金太乙) 등과 만세시위를 논의하였다. 강우근은 영덕읍 교회와 그 외 3개의 교회를 감독하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16일과 17일에 김암우(金岩佑)·이정규(李正奎)·강대열(姜大烈)·김용하(金龍河) 등에게 3월 18일 영덕 읍내 장날을 기회로 만세시위를 일으키자고 제의하였다. 제의를 받은 인물들은 각자 교인 동지들을 모았다. 1919년 3월 18일 영덕면의 화개동(華開洞)과 금호동, 남정면(南亭面)의 남정동(南亭洞) 등지로부터 남석동 장터에 모인 50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수백 명의 장꾼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일제 경찰은 주도 인물들을 체포하고 군중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1920년 3월 2일 풀려났다. 이후 고향에서 교회 활동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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