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한수

金漢洙

1877. 1. 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한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강원 화천(華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화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화천군 화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77년 1월 9일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화천면(華川面) 신읍리(新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향리에 거주하며, 화천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화천군에서는 1919년 3월 23일 화천면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화천면 신읍리에 사는 천도교인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화천군에는 천도교 평강교구를 통해 3월 3일 독립선언서가 천도교 화천교구에 전달되었다. 화천면에서는 김창희(金昌羲)·이은규(李殷奎) 등의 주도로 3월 23일을 거사일로 잡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 전날인 3월 22일 풍산리에서는 구장 강진희(姜陳希)를 통해서 군중을 동원하려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다. 하지만 신읍리에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계획대로 시위를 추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신읍리에서 2개의 깃발을 앞세운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를 향하였다. 행진 도중에 노동리에서 한정종(韓丁鍾)이 이끌고 오던 시위대와 합세하였다. 100여 명에 이르는 시위대는 일단 그곳에서 만세를 부른 뒤 화천읍내 장터로 향하였다. 풍산리에서 시위 준비가 발각되면서 미리 이날 시위 사실을 알고 있던 일제 헌병은 신읍리에서 화천읍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동지화(東芝化)고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시위대를 가로막았다. 일본 헌병과 시위대가 격돌하면서 일제 헌병이 시위대에 잡혀 뭇매를 맞고 짓밟혔다. 이 소식을 듣고 읍내에서 헌병 증원 부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막아서며 발포하자 시위대는 해산하고 말았다. 이 날 시위 현장에서 만세시위 주도자로 붙잡혀 기소되었다. 1919년 5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그 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래의 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다시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에 근거하여 만세를 불렀으니 유죄 판결은 부당하다”며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9월 2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